문화재의 색을 숫자로 기록한다고? 색차계가 변색을 추적하는 방법
박물관에서 오래된 그림이나 직물, 고문서를 바라보다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이 문화재의 색은 10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았을까?”
문화재의 색은 영원히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빛에 민감한 염료와 안료는 장기간 빛에 노출되면서 변색하거나 퇴색할 수 있고, 종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렇게 변할 수 있다. 표면의 바니시나 코팅층이 노화되면서 작품 전체의 색감이 달라져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매우 천천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같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조금씩 진행되는 변색을 오히려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사진과 비교하면 되지 않을까?
사진도 중요한 기록이지만 촬영 당시의 조명과 카메라, 노출, 화이트밸런스, 모니터 등에 따라 색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재 보존과학에서는 사람의 눈과 일반 사진만으로 색을 판단하지 않고 색차계나 분광측색계 등을 이용해 색을 수치화하여 기록하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다.
오늘 측정한 색과 몇 년 뒤 측정한 값을 비교하면 문화재의 색이 실제로 변화했는지를 보다 객관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목차
사람의 눈으로 색을 판단하면 안 될까?
사람의 눈은 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항상 동일한 조건에서 색을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조명이 달라지면 같은 물체도 다른 색처럼 보일 수 있다.
밝은 공간과 어두운 공간에서도 색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으며 주변에 어떤 색이 배치되어 있는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관찰자 개인에 따른 차이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오늘 어떤 그림을 보고 “조금 노랗게 변한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해보자.
이것만으로 실제 변색이 발생했다고 과학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문화재 보존에서는 주관적인 표현을 넘어 색을 일정한 조건에서 측정하고 숫자로 기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색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할까?
색을 수치로 표현하기 위해 여러 색 공간(Color Space)이 사용된다.
문화재 색 측정에서 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체계 가운데 하나가 CIELAB, 흔히 L,a,b로 표시하는 색 공간이다.
간단하게 이해하면 다음과 같다.
L은 밝고 어두운 정도인 명도를 나타낸다.
값이 달라지면 해당 부분이 이전보다 밝아졌는지 또는 어두워졌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a는 대략적으로 녹색과 빨간색 방향의 색 특성을 표현한다.
b는 대략적으로 파란색과 노란색 방향의 특성을 나타낸다.
따라서 “조금 누렇게 변했다”라는 표현을 사람의 느낌으로만 기록하는 대신 측정값의 변화를 이용해 색 변화의 방향과 정도를 분석할 수 있다.
색차란 무엇일까?
문화재 색 측정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색차(Color Difference)다.
쉽게 말하면 두 번 측정한 색이 얼마나 다른지를 수치적으로 비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를 시작하기 전에 직물 문화재의 특정 위치를 측정했다고 가정해보자.
일정 기간 전시한 뒤 같은 위치를 다시 측정한다.
두 측정값 사이에 차이가 나타난다면 색 변화가 발생했는지 분석하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ΔE(델타 E) 형태의 색차 지표를 접할 수 있다.
다만 ΔE 값 하나만으로 문화재가 안전하다거나 심각하게 손상됐다고 단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용한 색차 공식과 측정 장비, 측정 조건, 재료의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사진으로 비교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장소에서 매년 사진을 찍으면 변색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사진은 문화재 상태 기록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확한 색 변화 비교에는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카메라가 달라질 수 있고 렌즈나 조명이 달라질 수 있다. 촬영 설정과 화이트밸런스가 변할 수도 있다.
심지어 같은 파일이라도 어떤 모니터에서 보느냐에 따라 색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문화재 전체 상태를 시각적으로 기록하는 데 유용하고, 색차계나 분광측색 장비는 특정 지점의 색을 반복 가능한 데이터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라고 이해하면 쉽다.
두 방법은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다.
색차계는 문화재에 직접 닿을까?
색 측정 장비는 종류와 측정 방식에 따라 사용 방법이 다르다.
일부 장비는 측정 대상 가까이에 위치시키거나 표면과 접촉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고, 비접촉 방식의 장비도 활용될 수 있다.
문화재에서는 이 차이가 매우 중요하다.
표면이 튼튼한 재료라면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안료층이 들떠 있거나 섬유가 매우 약한 문화재라면 장비를 표면에 직접 접촉시키는 것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재 색 측정에서는 단순히 정확한 데이터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측정 과정에서 문화재에 손상을 주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번 같은 위치를 측정해야 하는 이유
문화재 표면의 색은 위치에 따라 다르다.
회화 작품이라면 얼굴과 옷, 배경의 색이 모두 다르고 같은 빨간색 영역 안에서도 안료의 두께와 표면 상태에 따라 측정값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변색을 추적하려면 가능한 한 동일한 지점을 반복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조사에서는 그림의 왼쪽 위를 측정하고 5년 뒤에는 조금 옆을 측정한다면 두 값의 차이가 실제 변색 때문인지 원래부터 존재했던 색 차이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측정 위치를 사진이나 도면으로 기록하고 측정 조건도 함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측정값만 저장하면 충분할까?
숫자만 저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어떤 장비를 사용했는지, 어느 위치를 측정했는지, 측정 당시 문화재의 상태는 어땠는지 등의 정보가 함께 있어야 나중에 데이터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다.
또한 장비 설정과 측정 방식 등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도 기록하는 것이 좋다.
문화재 보존과학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숫자가 많다고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같은 조건을 이해하고 비교할 수 있어야 좋은 데이터가 된다.
왜 빛에 민감한 문화재에서 특히 중요할까?
빛은 문화재 색 변화의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종이, 직물, 수채화, 사진, 일부 염료와 안료는 빛에 민감할 수 있다.
빛에 의한 변화에서 중요한 특징은 누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낮은 조도라도 장시간 노출되면 총 노출량은 계속 증가한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일부 광화학적 변화는 단순히 수장고의 어두운 곳에 다시 넣는다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민감한 문화재는 전시 조도와 기간을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색 변화를 장기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전시 전후 색을 비교하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빛에 민감한 직물 문화재를 특별전에 전시한다고 가정해보자.
전시 전에 주요 위치의 색을 측정해 기준값을 기록한다.
전시 기간 동안 조명 환경과 노출 시간을 관리하고, 전시가 끝난 뒤 같은 위치의 색을 다시 측정한다.
필요하다면 장기간 여러 차례 데이터를 축적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육안으로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변화도 정량적인 자료로 비교할 수 있다.
장기간 축적된 결과는 앞으로 해당 문화재의 전시 기간이나 조명 환경을 계획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즉, 색 측정은 단순히 현재 색을 기록하는 작업에서 끝나지 않고 예방적 보존과 연결된다.
종이가 누렇게 변하는 것도 측정할 수 있을까?
오래된 종이 문화재에서는 황변이나 어두워짐 같은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사람이 눈으로 봤을 때 “예전보다 누래진 것 같다”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객관적인 기준값이 없다면 변화 정도를 정확하게 비교하기 어렵다.
반면 동일한 위치의 색 측정 데이터가 장기간 축적되어 있다면 명도나 색 방향의 변화를 비교할 수 있다.
다만 색이 달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빛 때문일 수도 있고 재료 자체의 노화나 주변 환경, 표면 오염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색 측정은 변화를 발견하는 도구이며, 원인을 알아내려면 다른 분석이 추가로 필요할 수 있다.
복원한 부분의 색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까?
회화나 도자기 등의 보존처리 과정에서는 손실된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때 사용한 보존 재료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처리 직후에는 원래 부분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지만 수십 년 뒤 보수재만 다른 색으로 변한다면 시각적으로 눈에 띌 수 있다.
따라서 보존처리 전후의 색 정보를 기록해 두면 미래에 보수 재료의 안정성을 평가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35편에서 자외선 조사를 통해 과거의 보수 흔적을 찾았다면 36편의 색 측정은 그 부분의 색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수치로 추적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분광측색계는 무엇이 다를까?
문화재 색 연구에서는 분광측색계(Spectrophotometer)라는 장비도 사용된다.
이 장비는 대상이 여러 파장의 빛을 어떻게 반사하는지를 측정하여 분광 반사 특성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색 정보를 계산할 수 있다.
사람에게 비슷한 색으로 보이는 두 재료라도 빛의 파장별 반사 특성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단순한 육안 관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만 분광 정보만으로 문화재에 사용된 재료를 무조건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 목적에 따라 다른 분석 방법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색이 같으면 같은 안료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서로 다른 재료가 사람의 눈에는 매우 비슷한 색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부분 모두 비슷한 빨간색이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안료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
색 측정은 색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기술이지 그 자체만으로 화학 조성을 확정하는 기술은 아니다.
어떤 원소가 들어 있는지 알아보려면 XRF 같은 원소 분석법을 활용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다른 분광 분석이나 미세시료 분석을 병행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다음 37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문화재의 색을 측정하면 원래 색을 복원할 수 있을까?
현재 색을 정확하게 측정한다고 해서 수백 년 전 제작 당시의 색을 자동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색 변화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측정한 값은 지금 이 순간 문화재가 가진 색을 기록한 것이다.
제작 당시의 색을 연구하려면 재료 분석과 역사적 자료, 비교 작품, 열화 연구 등 훨씬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따라서 색차계는 타임머신이 아니다.
대신 지금부터 앞으로의 변화를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들어주는 장비에 가깝다.
아주 작은 변화가 중요한 이유
문화재 보존에서는 큰 손상이 눈에 보이기 전에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색이 눈에 띄게 사라진 뒤에는 이미 상당한 변화가 진행됐을 수 있다.
반면 정기적인 측정을 통해 초기 단계에서 변화 경향을 발견한다면 전시 환경이나 조명 조건 등을 다시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문화재의 색 변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난다면 전시 기간과 조도, 누적 광 노출량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30편에서 살펴본 예방적 보존의 핵심과 연결된다.
문제가 심각해진 뒤 복원하는 것보다 변화의 신호를 먼저 발견해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색 데이터는 문화재의 시간표가 된다
문화재의 색을 한 번 측정한 값은 단순한 숫자 몇 개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지점을 동일한 조건으로 1년, 5년, 10년 동안 반복해서 측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문화재의 색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간의 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이 문화재의 전체 모습을 보여준다면 색 측정 데이터는 육안으로 놓치기 쉬운 미세한 변화를 정량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온습도 기록과 전시 조도, 전시 기간 등의 환경 데이터를 함께 비교하면 변화 원인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의 눈 대신 숫자로 문화재의 변화를 지켜본다
박물관의 문화재는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색으로 변하는 경우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변화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화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늘 보고 내일 다시 봐도 똑같아 보이고, 1년 뒤에도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10년, 20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작은 변화가 의미 있는 차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화재 색차계와 분광측색 기술은 이러한 변화를 “조금 바랜 것 같다”는 주관적인 느낌에서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32편에서는 X선으로 문화재의 내부를 살펴봤고, 33편에서는 CT를 통해 내부를 3차원으로 재구성했다.
34편에서는 적외선으로 그림 아래에 숨어 있는 밑그림을 찾았고, 35편에서는 자외선으로 표면에 남은 바니시와 복원 흔적을 조사했다.
그리고 36편에서는 눈에 보이는 문화재의 색조차 사람의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고 숫자로 기록해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이러한 기술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가능한 한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더 궁금해진다.
금빛 문화재를 보고 “정말 금으로 만든 것일까?”, 붉은 안료를 보고 “여기에는 어떤 원소가 들어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문화재의 작은 조각을 떼어내지 않고도 그 답을 찾는 데 활용되는 대표적인 기술이 있다.
바로 XRF, X선 형광분석법이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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