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그림을 붙인 화첩은 왜 한 장씩 분리하기 어려울까? 연결 구조와 감상 순서의 보존
화첩 한 권을 전시한다고 생각해 보자. 산수화와 꽃 그림, 글씨가 여러 면에 담겨 있지만 진열장에서는 펼친 두 면만 보여줄 수 있다.
각 그림을 한 장씩 분리해 벽에 걸면 관람객이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보존처리도 개별적으로 진행하기 쉬울 것 같다.
그러나 화첩을 분리하는 일은 그림의 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관 방식만 바꾸는 작업이 아니다. 그림과 받침 종이의 관계, 페이지의 연결, 마주 보는 글과 그림, 넘겨보는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화첩에서 보존해야 할 대상은 개별 그림이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온 관계다.
목차
화첩은 작은 그림을 모아놓은 책일까?
화첩은 그림이나 글씨를 여러 면에 구성해 묶은 형식이다. 한 사람이 계획적으로 제작한 것도 있고, 서로 다른 시기나 작가의 작품을 모아 꾸민 것도 있다.
따라서 모든 화첩을 처음부터 하나의 연속된 작품으로 제작했다고 볼 수는 없다. 반대로 여러 그림을 모았다는 이유만으로 각각이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영국박물관의 중국 회화 형식 소개에서는 화첩에 그림과 글씨가 함께 구성되며, 시와 그림이 마주 보는 페이지에서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소개하는 주양공을 위한 화첩의 일부도 여러 작가가 참여한 수집과 교류의 맥락을 보여준다.
화첩은 무엇이 그려졌는지와 함께, 누가 어떤 관계 속에서 모으고 보았는지를 이해하는 자료가 될 수 있다.
분리한다는 것은 그림을 떼는 일일까, 페이지를 나누는 일일까?
화첩을 다룰 때는 서로 다른 작업을 구분해야 한다.
화첩의 연결부를 풀어 페이지 단위로 나누는 것과, 한 페이지에 붙은 그림을 받침 종이에서 떼어내는 것은 다르다.
그림을 붙인 페이지를 그대로 분리하더라도 기존의 제본과 연결 방식은 바뀔 수 있다. 반대로 그림 자체를 받침에서 떼면 원래 바탕과 접착 부분을 직접 다루게 된다.
두 작업은 영향을 받는 위치와 위험이 다르다. 따라서 ‘화첩을 분리한다’는 설명만으로는 처리 범위를 충분히 알 수 없다.
어느 연결을 풀고 어떤 층을 남길 것인지, 분리 후에는 각 부분을 어떻게 지지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모든 화첩은 같은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겉으로 책처럼 보여도 내부 구조는 다를 수 있다.
접힌 종이를 이어 구성하거나, 별도의 연결 재료로 두꺼운 면을 잇거나, 실로 묶는 등 여러 방식이 사용될 수 있다. 그림을 붙인 위치와 범위도 작품마다 다르다.
아일랜드 국립도서관이 소개한 앨범 보존 사례에서는 두꺼운 페이지와 연결 부분을 직물로 잇고, 종이와 직물층으로 책등을 만든 구조가 확인되었다. 일반적인 접지 묶음과 실 제본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이 사례는 동아시아 화첩의 구조를 그대로 설명하는 자료는 아니다. 다만 앨범이라는 비슷한 외형만 보고 연결 방식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분리 여부를 판단하려면 현재 구조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결부처럼 보이는 부분이 실제로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작업하면 예상하지 못한 곳이 손상될 수 있다.
페이지를 넘기는 힘이 그림에도 전달될까?
그림이 페이지에 붙어 있다면, 페이지가 휘거나 흔들릴 때 그 움직임이 부착 부위에 전달될 수 있다.
특히 받침 면과 그림 바탕의 유연성이 다르거나, 일부만 붙어 있는 경우에는 움직임을 함께 살펴야 한다. 페이지 자체가 안정적이어도 그 위의 그림이 취약할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앨범을 넘길 때 페이지 전체를 지지하고, 과도한 굽힘이나 물결 모양의 변형으로 부착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안내한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 소개한 중국 통초화 앨범에서는 그림들이 매우 취약해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추가 손상이 생길 수 있는 상태가 확인되었다.
통초화는 식물 줄기 속 조직을 얇게 잘라 만든 바탕에 그린 그림이다. 일반적인 종이 화첩과 재료는 다르지만, 페이지를 안전하게 넘길 수 있는지와 개별 그림의 상태를 따로 평가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림의 순서가 바뀌면 무엇을 잃게 될까?
가상의 예로, 꽃 그림 옆에 그 꽃을 노래한 시가 붙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림을 떼어 꽃 그림끼리 모으고 글씨를 별도로 정리하면 각 장의 내용은 남는다. 하지만 두 면을 마주 보며 감상하던 관계는 약해질 수 있다.
풍경이 이어지거나 계절을 따라 구성된 화첩이라면 배열이 감상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모든 순서에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후대 소장자가 바꾸었거나, 수리 과정에서 재배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현재의 순서와 제작 당시의 순서를 구분해야 한다. 확인된 배열은 기록하되, 그것을 곧바로 최초의 구성이라고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보존은 순서에 의미를 억지로 부여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관계를 잃지 않도록 남기는 일이다.
지금 순서가 잘못된 것 같으면 바로잡아도 될까?
그림의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재배열하기는 어렵다.
앞뒤의 글, 페이지 번호, 과거 사진이나 목록, 연결 흔적 등 여러 근거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내용상 자연스러워 보이는 순서와 물질적인 증거가 가리키는 순서가 다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계절 그림이라고 생각해 봄부터 겨울까지 배열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시기의 작품을 소장자가 모아 꾸민 화첩일 수 있다. 이 경우 보기 좋은 순서가 역사적으로 타당한 순서라고 할 수 없다.
근거가 부족하다면 현재 배열을 유지하고 의문점을 기록하는 선택도 가능하다.
확정된 사실과 해석을 구분해 두어야 이후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었을 때 다시 판단할 수 있다.
보존을 위해서라도 분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까?
분리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기존 구조가 작품을 계속 손상시키거나, 필요한 처리를 구조를 유지한 채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은 리먼 앨범 보존을 소개하면서 원래 형식을 유지하는 가치를 강조하는 한편, 앨범 구조 때문에 내용물이 손상되는 상황에서는 충분한 검토를 거쳐 형식 변경을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자료는 직물 디자인 앨범에 관한 사례이며, 모든 화첩에 동일한 결론을 적용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구조를 유지하는 이익과 그 구조가 일으키는 손상을 함께 비교했다는 점이다.
분리 자체를 성공이나 실패로 판단하기보다, 왜 필요한지와 어떤 정보가 영향을 받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분리가 필요하다면 무엇부터 기록해야 할까?
낱장으로 나눈 뒤에는 현재의 연결 관계를 다시 확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작업 전에 전체 구성과 각 장의 위치를 기록해야 한다.
표지와 첫 면부터 마지막 면까지의 배열, 마주 보는 두 면의 관계, 그림과 여백의 위치, 연결부와 뒷면에서 확인되는 흔적 등을 남길 수 있다.
페이지 식별번호는 순서와 연결되도록 관리하되, 원본에 임의로 표시를 추가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이미 떨어진 부분도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앨범에서 분리된 자료를 보관할 때 원래 위치나 관련 내용물과의 연결을 유지하도록 안내한다.
이러한 앨범 관리 원칙을 화첩에 적용할 때도 그림과 채색층의 특성에 맞는 별도의 판단은 필요하다. 특정 보관 재료를 모든 작품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그림을 한꺼번에 전시하려면 해체해야 할까?
여러 그림을 동시에 보여주고 싶은 전시 목적만으로 해체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원본은 상태에 맞는 면을 펼쳐 전시하고, 다른 면은 복제 이미지나 디지털 자료로 소개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페이지를 바꾸어 보여주는 방식도 가능하지만, 그때마다 취급이 필요하므로 상태와 운영 조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낱장 전시가 가능한 구조로 보존처리한 사례도 있다. 예일대학교 도서관은 판화를 모은 앨범에 새로운 비접착식 제본을 구성해 연구나 전시를 위해 개별 장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러나 이는 특정 대상의 조사와 처리 결과다. 화첩도 전시 편의를 위해 모두 같은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전시 방법은 원본이 허용하는 범위와 보존해야 할 구조를 확인한 뒤 선택해야 한다.
결국 화첩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각 그림의 종이와 채색은 기본적인 보존 대상이다. 동시에 그림을 붙인 자리와 연결 방식, 마주 보는 글, 페이지의 배열도 화첩을 이해하는 정보가 된다.
한 장씩 분리하면 개별 처리가 쉬워질 수 있지만, 분리 과정에서 손상이 생기거나 기존 관계가 흐려질 수 있다. 반대로 현재 구조를 무조건 유지하면 취약한 작품에 부담이 계속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화첩 보존에서는 ‘떼어낼 수 있는가’보다 ‘분리가 왜 필요하며 무엇이 달라지는가’를 먼저 묻는다.
148편에서 족자의 여러 구성 요소가 하나의 구조로 움직였다면, 화첩에서는 여러 면의 연결과 감상 순서가 보존 판단에 더해진다. 작품을 남긴다는 것은 각 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일과 그 장들이 함께 있었던 방식을 이해하는 일을 포함한다.
그런데 어떤 그림은 연결 구조보다 표면 자체가 취급의 큰 제약이 된다. 종이는 멀쩡해 보여도 가벼운 접촉만으로 색가루가 묻어나거나 표현이 달라질 수 있다.
150편 「파스텔화는 왜 표면에 닿지 않게 보호할까? 결합력이 약한 채색층의 보존」에서는 그림 표면에 닿는 작은 행동이 왜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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