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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침수되면 문화재부터 말리지 않는다? 물에 젖은 유물을 살리는 응급 보존의 과학

cho007 읽는 시간 약 12분
박물관이 침수되면

집에서 책이나 중요한 서류에 물을 쏟으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대부분 젖은 종이를 펼쳐 햇볕에 말리거나 드라이어를 이용해 최대한 빨리 건조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수백 년 된 고문서나 회화, 목재 문화재가 물에 젖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문화재는 단순히 물기를 제거한다고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이는 물을 흡수하면서 팽창하고 형태가 변할 수 있으며, 책은 여러 장의 종이가 서로 달라붙을 수 있다. 목재는 수분을 흡수하면서 팽창하고 이후 건조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휘어질 가능성이 있다.

금속 역시 물과 오염물질에 노출되면서 부식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박물관 침수 사고에서는 무조건 빨리 말리는 것보다 상황을 안정시키고 피해를 분류한 뒤 문화재의 재질과 상태에 맞는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문화재의 응급 보존(Emergency Conservation) 또는 재난 대응의 일부로 볼 수 있다.

박물관에서도 침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까?

박물관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지만 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집중호우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건물 내부의 배관 파손, 소방 설비 작동, 지붕 누수, 배수시설 문제 등 다양한 원인으로 물이 유입될 수 있다.

특히 수장고에 많은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다면 작은 누수도 여러 소장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문화재 재난관리에서는 화재뿐 아니라 누수와 침수도 중요한 위험 요소로 관리한다.

사고가 나면 문화재부터 들고 나올까?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장 귀중한 문화재부터 빠르게 들고나와야 할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사람의 안전과 사고 현장의 안정화다.

전기 설비가 물에 잠겨 감전 위험이 있을 수도 있고, 천장이나 선반이 손상되어 추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오염된 물이나 곰팡이 등 작업자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따라서 현장의 안전을 확인하지 않은 채 문화재를 구하기 위해 바로 들어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문화재는 중요하지만 사람의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물의 유입부터 막아야 한다

현장에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면 피해가 계속 확대되지 않도록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관에서 물이 새고 있다면 가능한 범위에서 유입을 차단하고, 지붕 누수라면 추가적으로 물이 떨어지는 위치에서 유물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바닥에 물이 계속 차오르고 있다면 배수 문제도 확인해야 한다.

눈앞의 젖은 유물만 닦고 있는데 물이 계속 들어온다면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화재 응급 보존에서도 원인 차단 → 현장 안정화 → 피해 평가 → 유물 구조의 순서가 중요하다.

모든 젖은 문화재를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다

대규모 침수 사고가 발생하면 수백 또는 수천 점의 자료가 한꺼번에 젖을 수 있다.

이때 모든 문화재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피해 정도와 재질, 문화재의 중요도, 손상 진행 속도 등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완전히 물에 잠긴 자료와 일부만 젖은 자료, 아직 젖지 않았지만 위험 지역에 있는 자료를 구분할 수 있다.

빠르게 변형되거나 곰팡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재료는 우선적인 대응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트리아지(Triage)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 의료 분야에서 환자의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개념이지만 재난 상황의 문화재 구조에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이 활용된다.

종이 문화재는 물을 만나면 어떻게 될까?

종이는 셀룰로오스 섬유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분을 쉽게 흡수한다.

물이 닿으면 섬유가 팽창하면서 종이의 크기와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잉크나 안료가 물에 민감하다면 번짐이나 색의 이동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책은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

여러 장의 종이가 젖은 상태에서 서로 눌리면 페이지가 달라붙을 수 있고, 책 표지와 본문의 재질이 서로 다르게 팽창하면서 전체 구조가 변형될 수 있다.

따라서 젖은 고문서나 희귀본을 무리하게 펼치거나 페이지를 강제로 떼어내는 것은 추가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왜 햇볕에 바로 말리면 안 될까?

젖은 물건을 햇볕에 놓으면 빨리 마르기 때문에 문화재에도 좋은 방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건조는 재료의 변형을 일으킬 수 있다.

종이와 목재처럼 수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재료는 표면과 내부의 건조 속도가 다르면 휘거나 갈라질 가능성이 있다.

직사광선은 빛에 민감한 안료와 염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문화재를 건조할 때는 단순히 가장 빠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게 수분을 제거하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드라이어로 말리면 더 빠르지 않을까?

뜨거운 바람을 이용하면 수분을 빠르게 제거할 수 있지만 문화재에는 위험할 수 있다.

높은 온도와 빠른 수분 이동이 재료의 변형을 일으킬 수 있고, 약해진 종이나 직물 표면에 강한 바람이 물리적인 손상을 줄 수도 있다.

회화 작품이나 복합재질 유물은 여러 재료가 서로 다른 속도로 건조되면서 새로운 응력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문화재가 침수되었다면 일반 가정용 드라이어나 난방기 등을 임의로 사용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젖은 책을 얼리기도 한다?

대량의 책과 문서가 침수되었을 때 모든 자료를 즉시 건조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곰팡이가 발생하거나 종이가 서로 달라붙을 수 있기 때문에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손상이 계속 진행될 수 있다.

이때 특정 조건에서는 동결을 이용하여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이 활용될 수 있다.

젖은 자료를 적절하게 포장한 뒤 냉동하면 곰팡이 성장과 일부 열화 과정을 늦추면서 대량의 자료를 순차적으로 처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후 상황에 따라 동결건조와 같은 전문적인 방법을 검토할 수도 있다.

다만 모든 문화재가 냉동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재질과 제작 방식에 따라 저온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

동결건조는 어떻게 작동할까?

동결건조(Freeze-Drying)는 젖은 자료를 얼린 뒤 낮은 압력 환경에서 얼음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수증기로 변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를 승화라고 한다.

대량의 침수된 문서와 책을 처리할 때 활용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동결건조 역시 모든 문화재에 적용할 수 있는 만능 기술은 아니다.

가죽이나 사진 자료, 특정 복합재질 등은 별도의 검토가 필요할 수 있다.

문화재 보존에서는 항상 재질을 먼저 파악한 뒤 처리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젖은 목재는 왜 천천히 말려야 할까?

목재는 내부에 많은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

젖은 목재를 너무 빠르게 건조하면 표면과 내부의 수분 함량 차이가 커지면서 응력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결과 뒤틀림이나 균열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특히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고고학적 목재는 일반적인 건조 방식으로 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가 약해져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목재 문화재는 상태와 종류에 따라 수분을 매우 세심하게 관리하면서 건조 또는 안정화 처리를 해야 한다.

금속 문화재도 물에 취약할까?

금속은 종이나 목재처럼 물을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침수에 상대적으로 강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은 금속 부식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물속에 염분이나 각종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면 부식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침수된 금속 문화재 역시 표면을 닦아내는 것만으로 끝내기보다 재질과 부식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보존처리를 검토해야 한다.

곰팡이와의 시간 싸움이 시작된다

25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젖은 유기질 문화재에서는 곰팡이 발생 위험도 커진다.

특히 따뜻하고 습한 환경이 지속되면 곰팡이가 성장하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침수 사고 이후에는 문화재 자체뿐 아니라 주변 공간의 습도와 공기 흐름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젖은 포장재와 상자를 그대로 주변에 쌓아두면 공간의 습도를 높이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침수 대응은 물 제거와 건조, 환경관리, 곰팡이 예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침수된 문화재도 상태 기록이 필요하다

21편에서 다룬 컨디션 리포트는 재난 상황에서도 중요하다.

가능한 범위에서 어떤 유물이 어느 위치에서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기록해야 한다.

완전 침수인지 부분 침수인지, 표면 오염은 있는지, 구조적 손상이 발생했는지 등을 사진과 함께 남길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이후 보존처리 우선순위를 정하고 상태 변화를 비교하는 자료가 된다.

또한 사고가 발생한 위치와 원인을 분석하여 향후 재난 예방 계획을 개선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평소의 보관 방법이 피해 규모를 바꿀 수 있다

문화재 재난관리는 사고가 발생한 뒤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수장고에서 유물을 바닥에 직접 보관하지 않고 일정 높이 이상의 선반에 두는 것만으로도 작은 침수 사고에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누수 위험이 높은 배관 아래에 중요한 소장품을 배치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방수 기능이 있는 보관 상자나 적절한 포장재가 일정 시간 물의 직접적인 접촉을 늦춰줄 수도 있다.

즉, 평소의 작은 보관 습관이 실제 재난에서는 문화재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바꿀 수 있다.

박물관에는 재난 대응 계획이 필요하다

문화재가 물에 잠긴 뒤부터 대응 방법을 고민한다면 이미 늦을 수 있다.

그래서 박물관과 기록관에서는 기관의 상황에 맞는 재난 대응 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누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지, 비상 상황에서 누구에게 연락할지, 유물을 어디로 옮길지, 어떤 응급 물품이 필요한지 등을 미리 검토한다.

흡수재와 장갑, 플라스틱 시트, 운반 상자 등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 두는 것도 대응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문화재 재난관리의 핵심은 사고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가 확대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문화재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보다 ‘올바르게’다

침수된 문화재를 보면 누구나 최대한 빨리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문화재 보존에서는 속도만큼 방법이 중요하다.

잘못된 방법으로 급하게 건조하면 물로 인한 최초의 손상보다 건조 과정에서 더 큰 변형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문화재 응급 보존은 사람의 안전 확인 → 물 유입 차단 → 피해 평가 → 우선순위 결정 → 재질별 응급처리 → 환경 안정화 → 상태 기록 → 전문 보존처리의 흐름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준비하는 것이다.

수장고의 배관과 지붕을 점검하고, 문화재를 바닥에서 띄워 보관하며, 비상 연락망과 대응 절차를 마련해 두는 작은 준비가 실제 재난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살릴 수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문화재가 단 몇 시간의 침수로 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이 이루어진다면 심하게 젖은 문화재도 다시 안정적인 상태로 보존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결국 문화재 재난관리에서 최고의 복원 기술은 사고가 난 뒤 사용하는 특별한 장비가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준비된 계획과 올바른 응급 대응 체계라고 할 수 있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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