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결과가 서로 다르면 무엇을 믿어야 할까? 여러 분석법을 함께 사용하는 이유
문화재의 붉은색 안료를 분석했다고 생각해 보자.
XRF로 측정했더니 철이 검출됐다. 그래서 철을 포함한 붉은 안료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런데 라만 분광분석을 해보니 예상했던 물질의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XRD로 조사했더니 또 다른 결정성 물질의 특징이 확인됐다.
분석 결과가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장비의 결과를 믿어야 할까?
문화재 분석에서는 이런 상황이 반드시 장비의 오류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분석법이 같은 문화재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어떤 분석은 원소를 보고, 어떤 분석은 분자의 구조를 살피며, 또 다른 분석은 결정 구조를 확인한다. 현미경은 입자의 형태와 층의 구조를 보여준다.
즉 하나의 문화재를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다.
90편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분석법을 하나로 연결해 보려고 한다.
문화재 보존과학에서 왜 하나의 분석 결과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서로 다른 분석법을 함께 사용하는지 알아보자.
목차
분석 장비마다 보는 것이 정말 다를까?
그렇다.
문화재를 분석하는 장비는 모두 같은 정보를 측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XRF는 주로 어떤 원소가 존재하는지 조사하는 데 활용된다. 철, 구리, 칼슘, 납처럼 물질을 구성하는 원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반면 라만 분광분석은 분자의 진동과 관련된 정보를 측정한다. 이를 통해 특정 안료나 광물처럼 물질의 화학적 구조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XRD는 결정성 물질의 원자 배열에서 나타나는 회절 패턴을 이용한다. 따라서 어떤 결정 구조를 가진 물질인지 확인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FT-IR은 적외선이 물질의 화학 결합과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는 흡수 특성을 측정한다. 접착제나 합성수지 같은 유기물의 분석에도 활용될 수 있다.
현미경은 또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입자가 어떤 모양인지, 서로 다른 색의 입자가 섞여 있는지, 표면에 여러 층이 존재하는지 등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시료를 조사해도 장비마다 질문 자체가 다르다.
철이 검출되면 철을 포함한 안료라고 확정할 수 있을까?
XRF에서 철이 검출됐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측정 조건에서 철과 관련된 신호가 검출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철이라는 원소는 다양한 물질에 포함될 수 있다.
안료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바탕 재료나 토양 성분, 오염물에서 비롯됐을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특히 문화재 표면에는 여러 층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측정된 원소가 정확히 어느 층에서 나온 것인지 추가 확인이 필요할 수 있다.
따라서 원소 분석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지만 원소 하나만으로 정확한 화합물까지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때 분자 구조나 결정 구조를 확인하는 다른 분석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원소와 화합물은 무엇이 다른 걸까?
문화재 분석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한 차이다.
원소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화학적 종류다. 철, 구리, 납, 칼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 문화재에서는 이런 원소들이 다른 원소와 결합해 다양한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다.
쉽게 비유하면 원소 분석은 요리에 어떤 주요 재료가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밀가루와 달걀, 설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케이크인지 과자인지 바로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재료의 종류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지도 알아야 실제 물질의 정체를 더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래서 원소 분석과 분자·결정 구조 분석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XRF와 라만 결과가 다르면 하나가 틀린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두 장비가 서로 다른 정보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XRF에서 특정 원소가 검출됐더라도 라만 분석에서는 그 원소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화합물의 구조와 관련된 신호를 찾는다.
또 실제 문화재 표면에서는 두 장비가 정확히 같은 범위를 측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XRF의 측정 영역과 라만 레이저가 조사하는 영역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
문화재 표면에 여러 종류의 작은 안료 입자가 섞여 있다면 XRF는 비교적 넓은 영역의 원소 정보를 얻는 반면 라만 분석은 그중 매우 작은 입자 하나의 특징을 측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결과가 달라 보인다면 먼저 두 분석법이 실제로 무엇을 측정했는지를 비교해야 한다.
같은 지점을 분석했는데도 결과가 다를 수 있을까?
가능하다.
겉으로 같은 지점을 측정했다고 해도 각 분석법이 정보를 얻는 깊이와 범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의 채색층을 생각해 보자.
가장 위에는 얇은 표면 오염층이 있고 그 아래에 안료층, 그 아래에는 바탕층이 존재할 수 있다.
어떤 분석법은 표면 가까운 영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있고, 다른 분석법에서는 아래층의 정보까지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같은 위치에서 측정했다고 해서 모든 분석법이 정확히 동일한 물질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문화재 분석에서는 위치뿐 아니라 측정 깊이와 분석 영역도 중요한 조건이다.
현미경 관찰이 기기 분석보다 먼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밀한 분석 장비가 있다면 현미경 관찰은 단순한 준비 과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시료를 분석할수록 현미경 관찰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붉은색 가루 하나를 확대했더니 실제로는 붉은 입자와 흰 입자, 검은 입자가 함께 섞여 있을 수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전체를 분석하면 여러 물질의 신호가 동시에 나타난다.
분석자는 왜 예상하지 못한 원소가 검출됐는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반대로 현미경으로 먼저 혼합 상태를 확인했다면 분석 결과에 여러 성분이 나타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현미경은 분석 장비의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공간적인 맥락을 제공하는 셈이다.
한 가지 분석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있을까?
있을 수 있다.
모든 문화재를 조사할 때 가능한 분석 장비를 전부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질문이 단순하고 한 가지 분석법으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불필요하게 추가 분석을 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특정 위치에서 어떤 원소들이 검출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조사 목적이라면 적절한 원소 분석만으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정확한 화합물의 종류까지 구분해야 한다면 원소 정보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
결국 몇 가지 분석법을 사용할지는 장비의 수가 아니라 조사 질문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좋은 분석은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분석이 아니라 필요한 질문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는 분석이다.
분석 결과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면 어떻게 할까?
먼저 결과를 억지로 하나로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측정 위치가 정확히 같았는지 확인하고 각 장비의 분석 영역과 깊이가 어떻게 다른지도 살펴본다.
시료가 여러 물질의 혼합물인지, 표면 오염이나 과거 보존처리 재료가 영향을 주었는지도 검토할 수 있다.
분석법의 검출 한계 역시 확인해야 한다.
특정 성분이 존재하더라도 양이 너무 적으면 어떤 분석에서는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다른 분석법에서는 그 성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결과는 반드시 문제가 아니라 시료가 예상보다 복잡하다는 신호일 수 있다.
분석 결과가 예상과 다르면 기존 가설을 바꿔야 할까?
필요하다면 바꿔야 한다.
과학 분석의 목적은 처음 세운 생각을 증명하는 데 있지 않다.
처음에는 붉은 부분이 하나의 안료로 만들어졌다고 예상했지만 분석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물질이 확인된다면 혼합 안료나 여러 채색층의 가능성을 새롭게 검토할 수 있다.
과거에 일부 영역이 다시 칠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분석 결과 하나만으로 이런 과정을 바로 확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처음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오류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다.
예상과 맞지 않는 데이터가 오히려 문화재의 제작이나 변화 과정에 관한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여러 분석 결과가 일치하면 완전히 확정할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원리의 분석법에서 일관된 결과가 나온다면 해석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원소 분석에서 예상되는 원소가 확인되고, 라만이나 XRD에서도 그와 부합하는 물질의 특징이 확인된다면 하나의 분석만 사용했을 때보다 판단 근거가 많아진다.
하지만 여러 결과가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경우에 100% 확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시료의 대표성이나 측정 위치, 검출 한계 같은 다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시료 하나의 분석 결과를 문화재 전체에 적용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분석법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석의 한계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과가 다른데 평균을 내면 안 될까?
서로 다른 분석법에서 나온 결과를 단순히 평균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각 분석법이 측정하는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XRF에서 얻은 원소 신호와 라만에서 얻은 스펙트럼은 같은 종류의 숫자가 아니다.
이 둘을 평균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각각의 결과가 어떤 질문에 답하는지를 구분한 뒤 서로 연결해야 한다.
XRF는 어떤 원소가 존재하는지를 알려주고, 라만은 특정 화합물의 구조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주며, 현미경은 그 물질이 어느 위치와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정보를 조립하면 하나의 분석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전체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
분석 장비가 많으면 결론도 더 정확해질까?
장비가 많다는 사실 자체는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같은 종류의 정보만 반복해서 얻거나 조사 목적과 관계없는 분석을 추가한다면 데이터만 많아질 수 있다.
또 시료가 필요한 분석을 무분별하게 추가하면 문화재에서 더 많은 물질을 채취해야 할 수도 있다.
89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비파괴 분석 역시 조건과 반복 횟수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여러 분석법을 함께 사용하는 목적은 장비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원리의 정보를 이용해 한 분석법의 한계를 다른 분석법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상보적인 분석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하면 서로 다른 장점을 가진 분석법을 조합해 같은 질문을 여러 방향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과거 보존 기록도 하나의 분석 결과처럼 중요할까?
경우에 따라 매우 중요하다.
문화재를 조사하는 정보는 기기 분석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과거 수리 기록이나 보존처리 보고서, 이전 조사 사진, 제작기법에 관한 자료도 결과를 해석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부분에서 합성수지가 검출됐는데 과거 보존처리 기록에 같은 영역에 해당 재료를 사용한 내용이 남아 있다면 분석 결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반대로 기록과 분석이 맞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질문이 생긴다.
기록되지 않은 처리가 있었는지, 다른 위치를 측정한 것인지, 재료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했는지 검토해야 한다.
문화재 보존과학에서 좋은 해석은 장비 화면만 보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석 결과를 종합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종합은 여러 분석 결과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다.
각 결과가 제공하는 정보와 한계를 구분한 뒤 서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붉은 채색층을 조사했다고 생각해 보자.
현미경에서는 서로 다른 색의 미세한 입자가 관찰됐다.
XRF에서는 철과 칼슘이 검출됐다.
라만 분석에서는 특정 붉은 광물과 관련된 특징이 확인됐다.
XRD에서는 시료에 포함된 결정성 물질의 정보를 추가로 얻었다.
이 결과들은 서로 경쟁하는 답이 아니다.
각각 입자의 형태, 원소, 분자 또는 결정 구조라는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보존과학자는 이런 정보를 문화재의 층 구조와 측정 위치, 과거 기록과 함께 비교해 가장 근거가 충분한 설명의 범위를 정한다.
끝까지 결과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때로는 여러 분석을 사용해도 하나의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수 있다.
문화재 시료가 너무 적거나 여러 물질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수 있다. 오랜 열화로 원래 물질의 특징이 크게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
분석 장비의 검출 범위를 벗어나는 성분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억지로 하나의 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분석으로 확인된 사실과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해 기록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원소는 확인됐지만 정확한 화합물은 결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릴 수도 있다.
또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남겨두고 추가 분석이나 향후 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아직 알 수 없다’는 결론도 분석의 중요한 결과다.
보존과학자는 결국 무엇을 믿을까?
보존과학자는 특정 장비 하나를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다.
먼저 어떤 질문에 답하려는지를 정하고 그 질문에 적합한 분석법을 선택한다.
각 분석 결과가 무엇을 직접 측정한 것인지 확인하고, 측정 위치와 범위, 검출 한계와 시료의 상태를 함께 검토한다.
필요하다면 서로 다른 원리의 분석법으로 결과를 비교한다.
현미경 관찰과 과거 기록, 문화재의 제작 구조와 현재 상태도 함께 살펴본다.
그리고 모든 정보가 말해주는 범위 안에서 결론을 내린다.
결국 문화재 분석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특정 장비의 이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증거들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연결되는가에 있다.
XRF와 라만, XRD, FT-IR, 현미경 등은 각각 강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하나가 모든 문화재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왜 결과가 다른지 조사하는 과정 자체가 문화재의 복잡한 재료 구성과 과거 변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81편부터 시작한 ‘보이지 않는 손상을 추적하는 보존과학’에서는 문화재 내부의 염류와 수분, 균열, 오래된 보존재료, 미세시료와 휘발성 물질을 어떻게 찾아내는지 살펴봤다. 이어 분석의 오차와 측정 위치, 비파괴 분석의 한계, 여러 분석법을 함께 해석하는 이유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정확하게 분석해 문화재의 상태를 알아냈다고 해도 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손상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해서 모두 원래 모습처럼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안정시키고 어디부터 복원이라고 보아야 하는지에 따라 문화재에 남는 모습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문화재 손상은 과연 어디까지 고치는 것이 적절할까?
다음 91편에서는 「문화재 손상은 어디까지 고쳐야 할까? 안정화와 복원의 경계」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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