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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종이는 왜 점점 약해질까? 셀룰로오스 노화와 종이 문화재

cho007 읽는 시간 약 26분

오래된 문서나 책을 넘길 때 종이 가장자리가 작은 조각으로 부서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종이는 수백 년이 지나도 비교적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지만, 어떤 종이는 살짝 구부리는 것만으로도 금이 가거나 찢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손으로 넘기는 순간 약해진 상태가 드러나기도 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단순히 종이가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종이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만히 있는 재료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수준에서는 매우 느린 화학 변화가 계속될 수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셀룰로오스다.

103편에서는 오래된 종이가 어떤 식물 섬유로 만들어졌는지를 조사하는 방법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질문이 완전히 다르다.

종이의 원료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섬유를 이루는 핵심 물질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어떻게 변하면서 종이를 약하게 만드는지를 살펴본다.

목차

종이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물질은 무엇일까?

종이는 기본적으로 식물성 섬유가 서로 얽혀 만들어진 재료다.

종류에 따라 원료와 제조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식물 섬유의 중요한 구성 성분 가운데 하나가 셀룰로오스다.

셀룰로오스는 포도당을 기본 단위로 하는 긴 사슬 형태의 고분자다.

고분자란 작은 분자 단위가 매우 많이 연결되어 만들어진 큰 분자를 말한다.

긴 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짧은 조각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긴 실이 되고, 이런 분자 사슬들이 모여 식물 섬유의 구조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종이가 약해지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눈에 보이는 종이 한 장보다 훨씬 작은 셀룰로오스 분자 수준까지 내려가야 한다.

셀룰로오스 사슬이 길다는 것이 왜 중요할까?

셀룰로오스는 많은 기본 단위가 연결된 긴 분자 사슬이다.

이 사슬이 충분한 길이를 유지하고 섬유 구조가 안정적으로 남아 있을 때 종이는 일정한 기계적 강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셀룰로오스 사슬이 화학적 반응에 의해 끊어질 수 있다.

긴 실이 여러 개의 짧은 실로 잘리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변화가 누적되면 섬유가 원래 가지고 있던 기계적 성질도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종이의 노화는 단순히 표면이 낡아가는 현상이 아니라 내부 고분자의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과 연결된다.

종이가 오래되면 셀룰로오스가 전부 사라지는 걸까?

그렇게 단순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종이에도 셀룰로오스는 남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존재 여부만이 아니다.

셀룰로오스의 분자 사슬이 어느 정도의 길이를 유지하고 있는지, 산화나 가수분해와 같은 화학 변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즉 새 종이와 오래된 종이 모두 셀룰로오스를 포함할 수 있지만 그 셀룰로오스의 상태는 같지 않을 수 있다.

보존과학에서는 단순한 성분의 존재보다 재료가 어떤 상태로 변화했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셀룰로오스 사슬은 왜 끊어질까?

종이 노화에 관여할 수 있는 중요한 반응 가운데 하나가 가수분해다.

가수분해는 물이 관여하여 화학 결합이 끊어지는 반응을 말한다.

종이가 물속에 잠겨 있어야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공기 중에도 수분이 존재하며 종이는 주변 환경과 수분을 주고받는 흡습성 재료다.

특히 산성 조건에서는 셀룰로오스 사슬의 결합이 끊어지는 반응이 촉진될 수 있다.

이를 산 촉매 가수분해와 관련해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종이 내부가 산성 조건에 놓일 경우 셀룰로오스의 긴 사슬이 더 빠르게 짧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종이가 산성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산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강한 산성 용액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종이 보존에서 말하는 산성 문제는 그렇게 눈에 띄는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종이를 구성하는 재료나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 물질, 주변에서 유입된 오염물질, 재료의 열화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질 등이 종이의 산성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종이의 종류와 제작시기에 따라 상황도 달라진다.

특히 근현대의 일부 종이는 원료와 제조공정의 특성 때문에 산성 열화가 중요한 보존 문제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래된 종이는 모두 산성이다”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전통 종이와 근현대 산업용 종이는 원료와 제조법이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 한지도 산성 때문에 똑같이 약해질까?

모든 종이가 같은 속도와 같은 원인으로 노화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의 원료가 무엇인지, 섬유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제조 과정에서 어떤 첨가물이 들어갔는지, 어떤 환경에서 보관되었는지에 따라 장기적인 안정성이 달라질 수 있다.

전통적인 닥섬유 기반 종이는 비교적 긴 섬유가 사용될 수 있으며 제조 과정도 근현대의 목재펄프 기반 종이와 다르다.

하지만 전통 종이라고 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빛과 수분, 열, 오염물질, 미생물, 물리적인 사용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종이의 이름만으로 현재 보존 상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 문화재의 상태를 조사해야 한다.

셀룰로오스의 ‘중합도’란 무엇일까?

종이 노화를 연구할 때 중합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중합도는 쉽게 말하면 고분자 사슬에 기본 단위가 얼마나 길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셀룰로오스 사슬이 길면 중합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사슬이 여러 번 끊어져 짧아지면 중합도가 낮아질 수 있다.

따라서 셀룰로오스의 중합도 변화는 종이 노화 정도를 연구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다만 문화재에서는 중합도를 알아보기 위해 필요한 시료와 분석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원본 문화재를 자유롭게 잘라 분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합도가 절반이 되면 종이 강도도 정확히 절반이 될까?

그렇게 단순한 비례관계로 볼 수는 없다.

종이의 강도는 셀룰로오스 사슬 길이 하나로만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섬유의 길이와 배열, 섬유 사이의 결합 상태, 종이의 두께와 밀도, 첨가물, 물리적 손상 등이 함께 영향을 준다.

이미 종이에 작은 찢김과 접힘이 많이 존재한다면 분자 수준의 상태가 비슷한 다른 종이보다 실제 사용 과정에서 더 쉽게 손상될 수도 있다.

따라서 중합도는 중요한 과학적 정보지만 종이의 모든 물성을 하나의 숫자로 설명하는 지표는 아니다.

산화도 종이를 약하게 만들까?

그렇다.

셀룰로오스는 산소와 관련된 여러 산화 반응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산화가 진행되면 셀룰로오스 분자의 화학 구조가 변화하고 경우에 따라 분자 사슬의 절단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종이의 기계적 성질뿐 아니라 색 변화와도 관련될 수 있다.

다만 종이가 누렇게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셀룰로오스 산화 정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다.

112편에서 다룰 황변은 셀룰로오스뿐 아니라 종이에 존재하는 여러 유기 성분과 화학 변화가 복합적으로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편에서는 색보다 강도 저하의 중심 원리에 초점을 맞춘다.

종이에 들어 있는 리그닌은 무엇일까?

식물 세포벽에는 셀룰로오스 외에도 여러 성분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리그닌은 식물 조직의 구조적 특성과 관련된 복잡한 고분자 성분이다.

종이를 만들 때 어떤 원료와 펄프화 방법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완성된 종이에 남아 있는 리그닌의 양은 달라질 수 있다.

일부 목재펄프 기반 종이에서는 리그닌과 관련된 화학 변화가 장기적인 색과 안정성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오래된 종이에 리그닌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섬유 처리와 현대 산업용 펄프 제조를 같은 조건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신문지가 오래되면 빨리 누렇게 되고 부서지는 이유도 같은 원리일까?

일부는 연결되어 있다.

신문과 같은 근현대 종이는 장기간 보존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재료가 아닐 수 있으며 사용된 펄프와 제조 조건에 따라 장기 안정성이 낮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가 누렇게 변하고 쉽게 찢어지는 현상은 내부의 여러 화학적 변화와 관련된다.

하지만 모든 신문이 동일한 속도로 노화되는 것은 아니다.

제조시기와 원료, 보관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다.

문화재가 된 근현대 신문이나 문서에서는 바로 이런 재료적 특성을 고려한 보존이 필요하다.

습도가 높으면 셀룰로오스가 더 빨리 약해질까?

수분은 종이 노화에서 중요한 조건이다.

종이는 주변의 상대습도에 따라 수분을 흡수하거나 방출한다.

수분이 존재하면 셀룰로오스의 가수분해와 관련된 반응 조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높은 습도와 높은 온도가 함께 지속되면 일부 화학적 열화 반응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습한 환경에서는 곰팡이와 같은 생물학적 열화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습도가 높으면 종이가 무조건 분해된다”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종이의 재료 특성과 온도, 노출 시간 등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그렇다면 종이는 최대한 건조하게 보관하면 좋을까?

이 역시 단순하지 않다.

종이 문화재의 보존에서는 화학 반응을 늦추는 것뿐 아니라 재료의 물리적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종이는 주변 습도 변화에 따라 수분을 주고받으며 크기와 물성이 달라질 수 있는 흡습성 재료다.

지나치게 건조한 조건이나 급격한 환경 변화가 항상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종이와 다른 재료가 결합된 문화재에서는 각 재료가 환경 변화에 서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존환경은 하나의 극단적인 숫자를 목표로 하기보다 문화재의 재질과 상태, 전시·보관 조건을 함께 고려해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도가 높으면 왜 노화가 빨라질까?

많은 화학 반응은 온도가 높아지면 반응 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종이 내부에서 일어나는 가수분해와 산화 같은 반응 역시 온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장기간 높은 온도에 노출되는 환경은 종이의 화학적 노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원리는 보존과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눈으로 보기에 당장 변화가 없어도 높은 온도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분자 수준의 변화가 더 빠르게 누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방보존에서는 현재 상태뿐 아니라 환경이 장기간 재료의 수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한다.

빛도 셀룰로오스를 약하게 만들 수 있을까?

빛 역시 종이의 열화와 관련된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에너지가 높은 자외선과 일부 가시광선은 종이와 종이에 포함된 여러 성분에서 광화학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광화학 반응이란 빛 에너지를 받아 시작되거나 촉진되는 화학 반응이다.

이 과정에서 분자 구조가 변화하고 색과 물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특징은 빛에 의한 손상이 누적된다는 점이다.

매우 강한 빛을 짧게 받는 것뿐 아니라 낮은 수준의 빛이라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총 노출량이 증가한다.

종이 문화재 전시에서 조명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전시를 끝내고 어둠 속에 넣으면 빛 손상이 다시 회복될까?

일반적으로 이미 일어난 광화학적 변화가 단순히 어둠 속에 둔다고 원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예방보존에서 중요하다.

빛에 노출된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이 문화재의 전시에서는 현재 얼마나 밝게 보이는지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되는 빛 노출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전시와 보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기 중 오염물질도 종이를 약하게 만들까?

가능하다.

공기 중에는 먼지뿐 아니라 다양한 기체상 오염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

일부 오염물질은 종이 표면에 흡착되거나 수분과 반응하면서 종이의 화학적 환경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보관상자나 진열장 내부에서 사용된 재료가 방출하는 물질도 경우에 따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종이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것은 단순히 먼지가 앉지 않도록 덮어두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화재 주변의 미세한 화학 환경까지 장기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책을 닫아 두면 안쪽 종이는 안전할까?

책의 내부는 직접적인 빛과 먼지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부 종이가 화학적 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종이 자체에 포함된 성분은 계속 변화할 수 있고 서로 맞닿은 재료 사이에서 물질이 이동할 수도 있다.

책 표지와 접착제, 잉크, 인쇄재료 등이 종이와 장기간 접촉하면서 영향을 주는 경우도 고려할 수 있다.

따라서 닫힌 책 내부도 하나의 복합적인 보존환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잉크가 있는 부분만 종이가 약해질 수도 있을까?

가능하다.

문화재의 기록재료 가운데 일부는 종이와 화학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특정 종류의 잉크는 조성과 열화 상태에 따라 주변 종이의 산화나 가수분해와 관련된 반응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글씨가 있는 부분을 따라 종이가 약해지거나 손상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모든 먹과 잉크가 종이를 같은 방식으로 손상시키는 것은 아니다.

105편에서 살펴본 전통 먹과 다양한 역사적 잉크는 재료 구성이 다르므로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종이가 바삭해졌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어떤 상태일까?

일상적으로 ‘바삭하다’고 표현하는 종이는 구부렸을 때 유연하게 변형되지 못하고 쉽게 금이 가거나 부러지는 상태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셀룰로오스의 분자량 감소와 섬유 결합 변화, 산화, 산성도, 수분 상태 등 여러 요인과 관련될 수 있다.

따라서 촉감 하나만으로 정확한 원인을 결정할 수는 없다.

보존과학자는 종이의 화학적 상태와 물리적 강도를 구분해서 조사한다.

왜 약해졌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어떤 조건에서 더 빠르게 손상될 가능성이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를 접어 보면 얼마나 약한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문화재 원본을 반복해서 접어 보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종이의 내절강도, 즉 반복적인 접힘에 얼마나 견디는지를 측정하는 시험법은 종이 재료 연구에서 사용될 수 있지만 원본 문화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시험 자체가 손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원본에서는 가능한 한 비파괴 또는 최소 침습적인 조사를 우선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유사한 재료의 시험편이나 별도의 비교 시료를 이용해 물성 변화를 연구할 수 있다.

문화재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문화재를 일부러 부러뜨릴 수는 없다.

종이의 산성도는 어떻게 알아볼까?

종이의 산성도와 관련된 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pH 측정이 활용될 수 있다.

pH는 물질이 얼마나 산성 또는 염기성 조건을 나타내는지를 표현하는 지표다.

다만 고체인 종이에서 pH를 측정하는 방법은 물속의 용액을 측정하는 것과 완전히 같지 않다.

측정법과 접촉 방식, 사용하는 물의 양과 위치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종이 한 장에서도 위치에 따라 상태가 다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하나의 pH 숫자를 문화재 전체의 절대적인 상태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pH가 낮으면 종이는 반드시 심하게 손상됐을까?

pH가 낮은 산성 상태는 셀룰로오스의 산 촉매 가수분해와 관련해 중요한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종이의 강도를 pH 하나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같은 pH를 나타내더라도 셀룰로오스의 분자 상태와 섬유 구조, 과거 환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재 pH가 비교적 양호하더라도 이미 과거에 상당한 분자 사슬 절단이 진행되었다면 원래의 강도가 자동으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화학적 조건과 누적된 과거 손상은 서로 구분해야 한다.

종이가 약해졌는지는 어떻게 측정할까?

일반적인 종이 재료에서는 인장강도와 인열강도, 내절강도 등 여러 물성 시험을 사용할 수 있다.

인장강도는 잡아당기는 힘을 얼마나 견디는지, 인열강도는 찢어짐에 얼마나 저항하는지를 살펴보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런 시험은 대개 시험편을 필요로 하거나 원본에 물리적인 힘을 가한다.

따라서 귀중한 종이 문화재에서는 적용에 큰 제약이 있다.

보존과학에서는 원본에 대한 직접적인 파괴시험 대신 이미 분리된 시료와 모사 시편, 비파괴적 관찰 자료 등을 조합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눈으로 멀쩡하면 아직 튼튼한 종이일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화학적 열화는 육안으로 큰 변화가 나타나기 전부터 진행될 수 있다.

셀룰로오스 분자 사슬이 짧아지고 있어도 종이의 형태는 당분간 유지될 수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약해지면 작은 충격이나 접힘에도 갑자기 손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예방보존에서는 눈에 보이는 손상이 발생한 뒤에만 대응하지 않는다.

재료의 특성과 보관환경을 바탕으로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약해진 종이에 보강재를 붙이면 다시 원래 종이가 될까?

보강을 통해 취급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경우는 있지만 노화된 셀룰로오스 분자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과는 다르다.

새로운 보강재를 추가하면 종이를 지지해 찢어짐이나 추가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끊어진 셀룰로오스 사슬이 단순히 보강재를 붙인다고 다시 길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보존처리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 남아 있는 원본을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개입이다.

산성 종이를 중성으로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산성 조건을 완화하는 탈산 처리가 종이 보존에서 활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모든 종이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종이에 있는 잉크와 안료, 접착제 등 다른 재료가 처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미 진행된 셀룰로오스의 분자 사슬 절단을 탈산만으로 되돌릴 수도 없다.

따라서 처리의 목적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열화 속도를 줄이고 재료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오래된 종이를 새 종이처럼 하얗게 만들면 더 잘 보존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색이 밝아지는 것과 재료의 장기 안정성이 좋아지는 것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오래된 종이의 색에는 자연적인 노화와 오염뿐 아니라 제작재료와 사용 역사가 함께 반영될 수 있다.

외관을 새것처럼 만드는 것을 목표로 강한 처리를 하면 원래 재료에 불필요한 영향을 줄 위험이 있다.

보존과학의 목표는 오래된 종이를 새 종이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다.

현재 남아 있는 역사적 재료를 이해하고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오래된 종이를 만질 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언제일까?

종이가 이미 취약해진 상태라면 단순한 열람과 이동도 위험할 수 있다.

책장을 넘길 때 가장자리에 힘이 집중되고 접힌 문서를 펼칠 때 기존 접힘선을 따라 파손될 수 있다.

큰 종이를 한쪽에서 들어 올리면 자체 무게 때문에 약한 부분이 찢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종이 문화재의 취급에서는 손의 청결뿐 아니라 어떻게 지지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상태가 매우 약하다면 직접 넘기지 않고 적절한 지지체를 이용하거나 디지털 자료를 열람에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보존상자는 종이의 노화를 막아줄까?

적절한 보존용 포장재는 먼지와 빛, 직접적인 접촉과 일부 환경 변화로부터 종이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자 안에 넣는다고 셀룰로오스의 노화가 완전히 멈추는 것은 아니다.

상자의 재료 자체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지도 중요하다.

문화재와 직접 접촉하는 종이와 보드, 접착재 등에서 원하지 않는 물질이 방출되거나 이동하지 않는지 고려해야 한다.

보존용 포장은 단순한 수납도구가 아니라 문화재 주변에 작은 보존환경을 만드는 재료다.

냉장하거나 얼리면 종이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을까?

낮은 온도에서는 많은 화학 반응 속도가 감소하기 때문에 특정 기록재료의 보존에서 저온 환경이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종이 문화재를 무조건 냉동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온도 변화 과정에서 수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다른 구성재료가 저온에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다.

또한 냉동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열람과 전시가 어렵다.

보존환경은 재료의 특성과 사용 목적을 함께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

낮은 온도라는 한 조건만 극단적으로 적용한다고 모든 보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종이가 얼마나 빨리 늙는지 실험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보존과학에서는 재료의 장기적인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가속열화 실험을 활용하기도 한다.

온도나 습도, 빛 등 특정 조건을 실제 보관환경보다 강하게 설정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재료 변화를 관찰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어떤 재료가 특정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할 수 있다.

하지만 가속열화 실험의 몇 주 또는 몇 달을 실제 문화재의 수백 년과 단순하게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조건이 달라지면 화학 반응의 종류와 상대적인 중요성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속열화 시험 자체의 의미와 한계는 130편에서 자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오래된 종이와 새 종이를 비교하면 노화 속도를 알 수 있을까?

단순 비교만으로 정확한 속도를 계산하기는 어렵다.

두 종이가 처음부터 같은 재료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원료와 제조법, 두께와 첨가물, 과거 보관환경이 다르면 현재 상태의 차이가 단순한 시간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보존과학에서는 가능한 한 재료 조건을 통제한 모사 시편을 만들어 변화 과정을 연구하기도 한다.

실제 문화재에서 얻은 정보와 실험 결과를 연결하되 두 자료가 완전히 같은 조건이라고 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수백 년 된 종이가 아직 튼튼한 것은 특별한 재료였기 때문일까?

재료 자체의 특성이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태는 재료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 보관되었는지, 빛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물에 젖은 적은 없는지, 얼마나 자주 사용되었는지 등 문화재가 지나온 전체 이력이 영향을 준다.

좋은 재료라도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빠르게 손상될 수 있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료라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보존되면 변화 속도를 낮출 수 있다.

문화재의 현재 모습은 재료와 시간이 함께 만든 결과다.

종이의 정확한 수명을 계산할 수 있을까?

“이 종이는 앞으로 정확히 137년 동안 안전하다”와 같은 방식의 예측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종이의 노화는 재료 조성과 환경, 과거 열화 정도, 앞으로의 보관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과학적 분석과 실험을 이용해 어떤 조건이 노화를 더 빠르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지 비교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위험을 줄이는 보존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

보존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수명 날짜를 맞히는 것보다 열화 속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보존과학자는 약해진 종이를 어떻게 조사할까?

먼저 종이의 전체 상태를 관찰한다.

찢어짐과 결손, 접힘, 변색, 얼룩, 표면 분말화 같은 현상이 어디에 나타나는지 기록한다.

그다음 종이의 제작재료와 구조를 살펴본다.

필요한 경우 섬유 종류와 산성도, 화학적 변화에 관한 정보를 조사할 수 있다.

과거의 보관과 전시 환경 기록이 있다면 함께 검토한다.

또한 현재 종이가 실제 취급을 견딜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 모든 정보를 종합해야 “오래돼서 약하다”는 막연한 설명을 넘어 어떤 열화 과정이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래된 종이는 왜 점점 약해질까?

가장 핵심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종이를 이루는 셀룰로오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셀룰로오스의 긴 분자 사슬은 산성 조건에서 촉진될 수 있는 가수분해와 산화 등의 영향을 받아 점차 짧아질 수 있다.

이 변화가 축적되면 섬유와 종이의 기계적 성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종이의 노화는 셀룰로오스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원료와 제조법, 첨가물, 온도와 수분, 빛, 대기오염, 사용과 보관 이력이 모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오래된 종이가 약해지는 현상은 단순히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 동안 어떤 화학반응이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진행되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 점 때문에 같은 시대의 종이라도 현재 상태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종이가 늙어가면서 나타나는 변화는 강도 저하만이 아니다.

오래된 책과 문서를 펼쳐보면 처음에는 밝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종이가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변해 있는 경우가 많다. 직물에서도 비슷한 색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노란색은 단순히 먼지가 쌓여서 생긴 것일까, 아니면 유기재료 내부의 화학 변화가 눈에 보이는 색으로 나타난 것일까?

다음 112편에서는 「종이와 직물이 누렇게 변하는 이유는? 유기재료의 황변을 만드는 화학 변화」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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