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이 잘 펼쳐지지 않으면 어디까지 열어도 될까? 제본 구조와 열람 각도의 판단
오래된 책에서 보고 싶은 페이지를 찾았다. 그런데 책을 펼쳐도 안쪽 글씨가 깊숙이 숨어 잘 보이지 않는다. 표지를 조금 더 벌리면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손을 놓으면 책은 다시 닫히려 한다.
이때 책 가운데를 눌러 평평하게 만들면 어떨까?
일상적으로 읽는 책에서는 무심코 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오래된 책에서는 표지와 본문의 연결부가 손상되거나, 약해진 종이가 제본 부근에서 찢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오래된 책은 모두 조금만 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은 비교적 넓게 펼쳐지고, 어떤 책은 좁은 각도에서도 세심한 지지가 필요하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책의 나이만이 아니다. 페이지를 묶은 방식과 표지의 연결 구조, 재료의 유연성, 현재 손상 상태가 함께 작용한다.
책을 안전하게 펼치는 일은 읽기 위한 준비인 동시에, 책의 구조를 이해하는 보존의 과정이다.
목차
책을 펼칠 때 실제로 움직이는 부분은 어디일까?
책을 열면 표지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에서는 여러 부분이 함께 형태를 바꾼다.
페이지를 모아 묶은 본문 덩어리, 이를 연결한 실이나 접착층, 책등과 표지를 잇는 부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기서 책등은 책을 세워두었을 때 제목이 보이는 쪽이며, 제본은 낱장을 묶어 책의 형태로 만드는 구조와 작업을 뜻한다.
일부 책은 종이를 접어 만든 여러 묶음을 실로 이어 붙인다. 다른 책은 낱장의 가장자리를 접착제로 연결한다. 옆면에 구멍을 내어 실로 묶은 책도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펼쳐질 때 휘어지는 위치와 힘이 전달되는 경로도 달라진다.
같은 크기의 책이라도 한 권은 자연스럽게 열리고 다른 한 권은 안쪽이 단단하게 버티는 이유다. 따라서 ‘오래된 책’이라는 분류만으로 같은 열람 방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실로 묶은 책은 접착한 책보다 마음껏 펼쳐도 될까?
실로 꿰맨 책이 비교적 유연하게 펼쳐지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실 제본이라는 이유만으로 넓게 열어도 된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이 약해졌을 수도 있고, 실이 통과하는 종이의 구멍 주변이 손상되었을 수도 있다. 표지와 본문을 잇는 부분이 취약하다면 페이지 묶음이 온전해도 다른 곳에 부담이 집중될 수 있다.
옆면을 꿰맨 동아시아 전통 서적도 구조와 종이 상태를 함께 살펴야 한다. 유연한 종이는 비교적 쉽게 넘어가지만, 뻣뻣하거나 취약해진 종이를 강제로 펼치면 꿰맨 부근에 힘이 모일 수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아시아 서적 취급 안내도 종이가 유연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고, 필요한 경우 받침을 사용하도록 설명한다.
제본 방식은 출발점이다. 실제 허용 범위는 그 구조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까지 확인해야 알 수 있다.
90도나 120도처럼 안전한 각도를 정할 수 있을까?
책 받침이나 열람 안내에서 90도 또는 120도 같은 숫자를 볼 수 있다. 이런 각도는 열람 환경을 준비하는 데 참고가 되지만, 모든 책에 적용되는 안전 보증은 아니다.
여기서 열림 각도는 책을 펼쳤을 때 양쪽이 벌어진 정도를 뜻한다. 평평하게 놓인 상태가 대략 180도이며, V자 형태로 덜 펼치면 각도가 작아진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잘 펼쳐지지 않는 아시아 서적에 대해 90~120도 범위에서 양쪽을 지지하는 방법을 안내하면서, 저항이 가장 적은 상태를 고려하도록 설명한다.
따라서 특정 숫자에 맞추기 위해 책을 더 벌려서는 안 된다. 어떤 책은 그보다 작은 각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다른 구조의 책은 비교적 넓게 열릴 수 있다.
각도는 책에 맞춰 조절하는 값이다. 책을 미리 정한 각도에 맞추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잘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손상됐다는 뜻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원래 제본 구조가 단단하거나 안쪽 여백이 좁은 책은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크게 펼쳐지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아주 쉽게 열린다고 해서 건강한 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연결부가 끊어져 저항 없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존전문가는 열림의 크기만 보지 않는다. 표지와 본문이 함께 안정적으로 움직이는지, 특정 지점이 당겨지는지, 이미 벌어진 틈이나 찢김이 있는지 확인한다.
열람 도중 표지가 비정상적으로 들리거나, 본문 묶음이 한쪽으로 움직이거나, 새로운 갈라짐이 보인다면 더 펼치는 행동을 멈추고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소리가 날 때까지 열어보며 한계를 시험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손상이 발생하기 전에 부담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책 받침은 각도만 줄여주는 도구일까?
책 받침은 벌어짐을 제한하는 것과 함께 무게를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오래된 책을 탁자 위에 반쯤 펼쳐 놓으면 한쪽 표지가 공중에 뜨거나 본문 일부가 아래로 처질 수 있다. 그러면 그 무게를 표지 연결부나 제본 부분이 떠받치게 된다.
쐐기형 받침이나 책 전용 쿠션은 양쪽 표지와 본문을 받쳐 이러한 부담을 줄이는 데 활용된다.
다만 받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책의 크기에 비해 너무 작거나 높이가 맞지 않으면 가장자리가 처지거나 특정 부분에 힘이 몰릴 수 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책을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려고 강제하지 말고, 펼친 표지 아래를 지지해 열림 각도를 줄이도록 안내한다.
받침은 책을 고정된 모양으로 누르는 틀이 아니라, 책이 무리 없이 놓이도록 돕는 지지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받침을 조절해야 할까?
처음 몇 장을 읽을 때와 책의 중간을 읽을 때는 양쪽에 쌓인 페이지의 두께가 다르다.
처음에는 한쪽에 대부분의 페이지가 몰려 있다가, 읽어가면서 반대쪽의 두께가 커진다. 그런데 받침의 위치와 높이를 처음 상태로 유지하면 얇은 쪽이 충분히 지지되지 않거나 페이지가 한쪽으로 기울 수 있다.
예일대학교 도서관은 여러 부품으로 구성된 폼 받침이 페이지를 넘기며 열람할 때 지지 상태를 조절하는 데 유연하게 쓰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책을 받치는 일은 처음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페이지가 이동할 때 본문이 안정적으로 놓여 있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페이지를 오래 보여주는 전시와 여러 페이지를 계속 넘기는 열람에 서로 다른 받침 구성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책이 닫히지 않게 무거운 물건을 올려도 될까?
열린 책이 자꾸 닫히면 손이나 물건으로 눌러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무게를 더하는 것이 언제나 안전한 해결책은 아니다.
보존 열람에서는 부드럽고 유연한 전용 누름 도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적은 압력으로 페이지를 유지하도록 돕는 도구이며, 책을 강제로 넓히는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책이 계속 닫히려고 한다면 누르는 힘을 늘리기 전에 열림 각도와 받침 상태부터 검토해야 한다.
문진이 글씨나 채색층에 직접 닿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표면이 쉽게 떨어지거나 문질러질 수 있는 자료라면 접촉 자체가 부적절할 수 있다.
결국 누름 도구를 쓸지, 어디에 놓을지, 어느 정도의 무게가 가능한지는 해당 페이지와 책의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안쪽 글씨를 촬영하려면 평평하게 눌러야 하지 않을까?
책 안쪽의 글씨는 곡면을 따라 휘어 보이거나 그림자에 가릴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고 책을 스캐너 유리 위에 엎어 놓고 누르면 제본과 종이에 부담이 생긴다.
미국 의회도서관의 디지털화 지침은 촬영을 위해 책을 평평하게 누르지 않도록 안내한다. 그러한 압력은 책등을 손상시키거나 취약한 페이지를 느슨하게 만들고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림이 제한된 책은 받침에 놓은 상태에서 촬영 방법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촬영 장비와 작업 과정도 원본이 허용하는 자세에 맞춰야 한다.
영국도서관 역시 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자료를 누르거나 변형하지 않도록 안내한다.
선명한 이미지를 얻는 것은 중요하지만, 원본을 손상시켜 얻은 평평함이 촬영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책에서 접힌 지도나 큰 도판이 나오면 어떻게 할까?
책의 크기보다 큰 지도나 도판이 접혀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책을 지지하는 것과 접힌 자료를 지지하는 일을 따로 생각해야 한다.
도판을 펼쳤을 때 바깥으로 나온 부분이 공중에 매달리면 접힌 선이나 책에 붙은 지점이 무게를 떠받치게 된다. 이미 취약한 접힘에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미시간주립대학교 도서관은 접힌 자료의 구조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열고, 펼친 부분 아래에 지지판을 받치는 방법을 안내한다.
접힌 순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잡아당기거나, 걸리는 부분을 힘으로 펴서는 안 된다. 서로 붙어 있거나 접힘이 손상된 경우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
책 본문이 안정적으로 놓여 있어도 부속 자료까지 안전하게 지지되고 있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제본이 불편하면 실을 풀어 낱장으로 보면 될까?
책을 분리하면 글씨를 보기 쉽고 촬영도 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제본은 내용물을 묶어둔 장애물만은 아니다.
페이지가 연결된 순서와 방식, 표지와의 관계, 과거에 고친 흔적은 책을 물질적인 대상으로 이해하는 정보다. 작업 편의를 위해 분리하면 이러한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제본 해체는 단순한 열람 방법이 아니라 원본의 구조에 개입하는 보존 판단에 해당한다. 필요한 처리인지, 다른 접근 방법은 없는지, 구조 정보를 어떻게 남길지 등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
읽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해체를 선택할 수는 없다. 기존 촬영 자료를 이용하거나 열람 범위를 조정하는 방법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래된 책은 어디까지 펼쳐도 될까?
모든 책에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각도로 답하기는 어렵다.
제본 방식과 현재 상태를 살피고, 표지와 본문을 적절히 지지한 상태에서 무리한 힘이 걸리지 않는 범위로 접근해야 한다. 책의 앞부분과 뒷부분, 부속 자료가 있는 페이지에서는 필요한 지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잘 열린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연결부가 손상되어 쉽게 벌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구조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
안전한 열람의 목표는 책을 최대한 넓게 여는 데 있지 않다. 필요한 내용에 접근하면서 책을 이루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145편에서 살펴본 철갈잉크 부식이 글씨와 종이의 관계를 보여줬다면, 이번 편은 그 종이들이 묶여 하나의 책이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를 다뤘다. 기록유산을 보존하려면 글자뿐 아니라 그 글자가 놓인 물질과 구조까지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종이는 책 속의 페이지로만 쓰이지 않는다. 옛 그림의 뒷면에도 다른 종이가 붙어 작품을 지탱하는 경우가 있다. 오래되어 변색되거나 일부가 떨어진 뒷면 종이는 교체해야 할 부속물일까, 작품을 유지하는 중요한 구조일까?
147편 「옛 그림 뒷면의 종이는 떼어내도 될까? 배접지의 역할과 제거의 판단」에서는 그림 뒤에 붙은 종이가 보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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