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눈은 문화재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산성비와 야외 문화유산의 풍화
비가 내리는 오래된 석탑을 생각해보자.
수백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돌 위로 빗물이 흐른다.
비가 그치면 햇빛이 비치고 표면은 다시 마른다. 겨울이 되면 눈이 쌓이고 물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우리 눈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하지만 문화재의 입장에서 비와 눈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물이 문화재 내부로 들어가고, 오염물질을 운반하고, 염류를 이동시키며 때로는 얼음으로 변해 작은 틈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65편에서는 도시의 대기오염물질이 석조문화재의 표면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살펴봤다.
그런데 공기 중의 오염물질은 공기 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비와 안개, 눈과 만나 문화재 표면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백 년 동안 비를 맞아온 석탑과 석불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그리고 앞으로 기후가 달라지면 야외 문화유산의 풍화 속도도 달라질까?
이번에는 문화재와 물의 관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자.
목차
비는 그냥 깨끗한 물일까?
우리는 흔히 빗물을 자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빗물에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여러 물질이 녹거나 섞일 수 있다.
먼지와 미세입자뿐 아니라 다양한 기체 성분도 빗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특히 산업활동과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등은 대기 중에서 여러 반응을 거쳐 산성 성분 형성에 관여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이 강수와 함께 지표로 내려오면 문화재 표면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즉, 야외 문화재가 맞는 비는 단순한 물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주변 환경의 흔적을 함께 운반하는 매개체라고 볼 수 있다.
산성비는 정확히 무엇일까?
일반적인 빗물도 완전히 중성인 것은 아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으면서 약한 산성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오염물질의 영향으로 산성 성분이 증가하면 빗물의 산성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보통 이러한 현상을 산성비와 연결해 설명한다.
문화재 보존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비의 pH 숫자 하나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오염물질이 존재하는지, 문화재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얼마나 자주 젖고 마르는지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같은 비를 맞더라도 모든 문화재가 똑같이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도 산에 녹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하지만 돌의 종류에 따라 반응은 크게 다르다.
석회암이나 대리석처럼 탄산칼슘을 주요 성분으로 하는 석재는 산성 환경과 반응할 수 있다.
산성 성분을 포함한 물이 표면과 반복적으로 접촉하면 아주 천천히 재료의 변화가 진행될 수 있다.
처음에는 눈으로 거의 확인하기 어려운 수준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표면의 광택이 줄거나 세밀한 조각이 흐려지고 재료 손실이 누적될 수 있다.
문화재의 변화는 한 번의 강한 비보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반복된 작은 반응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석회암과 화강암은 비에 똑같이 반응할까?
그렇지 않다.
석재는 하나의 동일한 재료가 아니다.
석회암과 대리석, 화강암, 사암 등은 구성 광물과 조직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물과 산성 성분, 온도 변화에 대한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
화강암은 석회암과 같은 방식으로 산에 반응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풍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 광물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광물마다 다른 속도로 변화할 수 있고 균열과 입자 사이로 물이 침투하면서 물리적·화학적 풍화가 진행될 수 있다.
결국 “돌은 단단하니까 비에 강하다”라는 한 문장으로 모든 석조문화재를 설명할 수 없다.
비가 문화재 표면을 씻어주기도 하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다.
빗물이 표면의 일부 먼지와 오염물질을 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를 직접 맞는 부분과 비를 거의 맞지 않는 부분에서 오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비가 항상 문화재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빗물은 오염물질을 이동시키는 역할도 한다.
표면을 따라 흐르면서 특정 위치에 물질을 집중시키거나 균열 안으로 운반할 수도 있다.
따라서 비는 세척과 오염이라는 서로 다른 작용을 동시에 만들 수 있다.
왜 처마 밑이 오히려 더 검게 보일 때가 있을까?
흥미롭게도 비를 직접 맞지 않는 부분에서 검은 오염층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비를 맞는 표면에서는 일부 오염물질이 씻겨 내려갈 수 있지만 비가 닿지 않는 영역에서는 대기 중 입자와 반응 생성물이 계속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65편에서 살펴본 석조문화재의 검은 표면이 건물의 돌출부 아래나 빗물이 직접 닿지 않는 영역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이유와 연결된다.
따라서 문화재 표면의 오염 분포를 보면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와 비를 얼마나 직접 맞는지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빗물이 흐르는 길도 문화재에 흔적을 남길까?
그렇다.
석조문화재를 자세히 보면 특정 부분에 세로 방향의 얼룩이나 색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물이 반복적으로 같은 경로를 따라 흐르면서 오염물질과 용해된 성분을 이동시키기 때문이다.
조각상의 코끝이나 옷 주름, 건축물의 돌출부처럼 물이 집중되는 위치에서는 주변과 다른 풍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보존과학자는 손상된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이 어디에서 들어오고 어디로 빠져나가는지도 함께 관찰한다.
작은 균열에 물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돌 표면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과 기공이 존재할 수 있다.
빗물은 이러한 공간으로 침투할 수 있다.
물이 들어갔다가 다시 증발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내부에 녹아 있던 물질이 이동할 수 있고 환경에 따라 다른 열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겨울에는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긴다.
물이 얼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얼면 왜 돌이 깨질까?
물은 얼면서 상태와 구조가 달라진다.
돌 내부의 제한된 공간에 존재하는 물이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면 균열과 기공 주변에 물리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한 번 얼었다 녹았다고 거대한 석탑이 바로 깨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반복이다.
겨울마다 젖고 얼고 녹는 과정이 오랫동안 반복되면 이미 약해진 표면이나 균열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동결융해에 의한 풍화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겨울이 추울수록 무조건 위험할까?
단순히 최저기온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물이 존재해야 동결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춥더라도 문화재가 건조한 상태라면 상황이 다를 수 있다.
반대로 기온이 0℃ 주변을 자주 오르내리면서 문화재가 반복적으로 젖어 있다면 동결과 해동의 반복 횟수가 증가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존에서는 기온뿐 아니라 강수와 수분 상태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눈이 쌓이는 것도 문제가 될까?
눈 자체가 항상 즉각적인 손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
문화재의 틈이나 수평면에 눈이 오래 쌓인 뒤 녹으면 특정 부분에 많은 수분이 공급될 수 있다.
낮에는 녹고 밤에는 다시 어는 상황이 반복될 수도 있다.
또 눈에는 대기 중의 입자와 오염물질이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적설과 융설 과정 역시 야외 문화유산의 수분 환경을 이해할 때 고려해야 한다.
얼음을 뜨거운 물로 녹이면 안 될까?
문화재에 얼음이 붙어 있다고 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빠르게 녹이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급격한 온도 변화가 재료에 새로운 스트레스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추가적인 물이 문화재 내부로 침투할 가능성도 있다.
문화재 보존에서는 눈앞의 얼음을 빨리 없애는 것보다 왜 물이 그곳에 모이고 얼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겨울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의 문화재는 더 빨리 풍화될까?
강수량은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지만 그것만으로 풍화 속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석재 종류와 기공 구조, 온도, 대기오염, 햇빛, 바람, 생물 활동, 문화재의 방향과 구조 등이 함께 영향을 준다.
같은 지역에 있는 두 석조문화재도 하나는 햇빛이 잘 들고 다른 하나는 그늘지고 습하다면 서로 다른 풍화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문화재 주변의 아주 작은 환경 차이가 장기간에는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문화재가 더 빨리 마르니까 좋은 것 아닐까?
경우에 따라 표면의 수분을 빠르게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은 또 다른 역할도 한다.
먼지와 모래, 염류 입자를 문화재 표면으로 운반할 수 있다.
강한 바람이 입자를 반복적으로 충돌시키면 취약한 표면에 물리적인 마모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해안에서는 바람이 염분을 포함한 입자를 내륙으로 운반하기도 한다.
따라서 바람은 건조를 돕는 요인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오염과 풍화 요인이 될 수 있다.
비가 온 뒤 하얀 가루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석재나 벽돌, 도자기 같은 다공성 재료에서는 물과 함께 염류가 이동할 수 있다.
재료 내부에 존재하던 염류가 물에 녹아 표면으로 이동한 뒤 물이 증발하면 결정이 남을 수 있다.
표면에 하얀 가루나 결정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백화와 관련해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얀 물질이 보인다고 모두 같은 원인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재료와 환경, 성분을 조사해야 한다.
소금이 돌을 깨뜨릴 수도 있을까?
염류는 야외 문화재에서 매우 중요한 열화 요인이다.
물이 증발하면서 염이 결정화하거나 환경 변화에 따라 결정 상태가 달라질 때 재료의 기공 내부에서 물리적인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표면이 가루처럼 떨어지거나 얇게 박리되는 손상과 연결될 수 있다.
특히 다공성 석재와 벽돌, 토기 등에서는 염류의 이동과 결정화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눈에 보이는 하얀 가루를 털어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다.
염류는 어디에서 들어올까?
원인은 다양하다.
토양에서 올라올 수도 있고 건축재료 자체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다.
과거에 사용한 보수재료에서 유래할 가능성도 있다.
해안에서는 바닷물에서 발생한 염분이 바람을 통해 이동할 수 있다.
겨울철 제설제가 주변 문화유산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환경에 따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염류 문제가 발견되면 단순히 표면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원을 찾아야 한다.
바닷가 문화재가 특히 어려운 이유
해안 환경에서는 수분과 염분, 바람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
바닷물의 미세한 물방울과 염분 입자가 바람을 타고 문화재 표면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염류가 기공 내부로 들어가 습도 변화와 함께 이동하고 결정화하면 재료에 반복적인 부담을 줄 수 있다.
금속 문화재에서는 염화물이 부식과 관련된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같은 석조문화재라도 내륙과 해안에서는 관리해야 할 환경 위험이 달라질 수 있다.
비가 문화재 안쪽까지 들어갔는지 어떻게 알까?
항상 눈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표면은 이미 말랐지만 내부에는 수분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문화재의 상태와 조사 목적에 따라 수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비파괴 조사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또 장기간의 사진 기록을 비교하면 비가 온 뒤 반복적으로 색이 어두워지는 영역이나 얼룩이 생기는 위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번의 관찰보다 반복적인 기록이다.
비가 온 직후 문화재 색이 진해지는 이유
많은 다공성 재료는 젖었을 때 평소보다 색이 어둡거나 진하게 보일 수 있다.
물 때문에 빛이 표면에서 반사되고 산란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가 온 직후 촬영한 사진과 완전히 건조된 상태에서 촬영한 사진을 단순 비교하면 실제 변색으로 오인할 수 있다.
59편에서 AI를 이용해 문화재의 색 변화를 분석할 때 촬영 조건이 중요하다고 살펴본 것과 같은 이유다.
장기 모니터링에서는 문화재의 수분 상태도 기록 조건에 포함될 필요가 있다.
이끼와 지의류는 비가 많으면 더 잘 자랄까?
수분은 생물 성장에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문화재 표면이 오랫동안 습한 상태로 유지되면 조류와 이끼, 지의류 등 다양한 생물의 서식과 관련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생물이 자라는지는 빛과 온도, 재료의 표면 상태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또 생물이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 역시 단순하지 않다.
다음 편에서는 이 문제를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이끼가 보기 싫다고 바로 긁어내면 안 되는 이유
석조문화재 표면에 초록색이나 검은색 생물이 보이면 솔이나 도구로 긁어내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생물이 약해진 표면과 강하게 결합해 있다면 제거 과정에서 원본 입자가 함께 떨어질 수 있다.
또 생물의 종류와 뿌리 또는 균사 구조, 표면 상태에 따라 제거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56편에서 세척은 무엇을 제거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살펴본 원칙이 야외 문화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를 막기 위해 지붕을 씌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보호각이나 차양은 직접적인 강수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구조물을 설치하면 문화재 주변의 공기 흐름과 햇빛, 건조 속도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잘못 설계하면 오히려 습기가 오래 머무는 미세환경을 만들 가능성도 있다.
또 거대한 야외 문화유산 전체를 지붕으로 덮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경관과 문화재의 의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비를 막는 것만으로 보존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발수제를 바르면 빗물이 들어가지 않지 않을까?
석재 표면에 물의 침투를 줄이기 위한 처리재가 사용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재에서는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처리재가 표면의 색과 광택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내부 수분의 이동과 증발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처리재가 열화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54편과 55편에서 살펴봤듯 보존재료는 처음 적용했을 때의 성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호환성과 재처리 가능성이 중요하다.
비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보존일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수백 년 동안 야외에 존재해온 문화유산은 장소와 환경 자체가 문화재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
비를 막기 위해 문화재를 실내로 옮기거나 거대한 구조물로 둘러싸면 물리적 보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원래 장소와 경관이라는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보존은 단순히 재료의 수명을 최대화하는 문제만은 아니다.
어떤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지킬 것인지 함께 판단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야외 문화재에 중요한 이유
60편에서 미래 보존과학을 이야기하면서 기후변화가 문화유산 관리의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살펴봤다.
기온과 강수 패턴이 달라지면 문화재가 경험하는 젖음과 건조, 동결과 해동의 조건도 달라질 수 있다.
집중호우와 홍수, 폭염과 가뭄 같은 극한기상이 달라지면 기존에 안정적이던 문화재의 위험 환경도 바뀔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기후 조건에서 잘 작동했던 관리 방법이 미래에도 항상 동일하게 적합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비가 더 많이 오는 것만이 문제일까?
아니다.
강수량의 총량뿐 아니라 비가 내리는 방식도 중요할 수 있다.
같은 양의 비가 여러 날에 걸쳐 조금씩 내리는 경우와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경우는 문화재 주변의 배수와 토양 수분에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오랜 가뭄 뒤 갑작스러운 폭우가 오는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
문화재 보존에서 기후변화를 단순히 ‘평균기온이 몇 도 올라간다’는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100년 뒤에도 같은 위치가 안전할까?
현재 안전해 보이는 문화재의 위치가 미래에도 같은 위험도를 가진다고 보장할 수 없다.
하천 주변에서는 홍수 위험이 달라질 수 있고 해안에서는 침수와 염분 환경을 다시 평가해야 할 수 있다.
산지에서는 집중호우에 따른 토사 이동이나 사면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문화유산 보존은 문화재 자체만 바라보는 분야에서 주변 지형과 기후, 재난 위험까지 함께 관리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다.
야외 문화재는 박물관 안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
물리적인 환경만 생각하면 실내에서 더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모든 문화유산을 박물관 안으로 옮길 수는 없다.
석탑과 성곽, 고분, 건축물과 유적은 장소 자체가 문화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세워졌는지, 주변 경관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역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야외 문화유산 보존은 자연환경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환경 속에서 손상 위험을 관리하는 문제에 가깝다.
문화재의 빗물길을 바꾸는 것도 보존일까?
경우에 따라 매우 중요한 보존조치가 될 수 있다.
건축문화유산에서는 지붕과 홈통, 배수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물이 특정 위치로 집중될 수 있다.
석조문화재 주변의 배수가 좋지 않으면 지면의 수분이 오래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직접 문화재 표면에 약품을 바르는 것보다 물이 잘 빠지도록 주변 환경과 배수 구조를 관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이것이 예방적 보존의 핵심적인 사고방식이다.
풍화는 모두 멈춰야 할 손상일까?
여기에서도 문화재 보존의 어려운 질문이 등장한다.
야외에 존재하는 돌은 자연스럽게 풍화한다.
수백 년 동안 비와 바람을 맞으며 만들어진 표면 자체가 문화재의 시간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빠르게 진행되는 재료 손실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따라서 보존과학자는 모든 변화를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화재의 중요한 정보를 위협하는 변화가 어느 정도 속도로 진행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10년 전 사진이 중요한 이유
야외 문화재에서는 장기적인 비교 기록이 특히 중요하다.
현재 작은 균열 하나만 보면 언제 생겼는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10년 전 사진과 비교했을 때 같은 균열이 그대로라면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일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반대로 균열이 점차 길어지고 표면 손실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면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할 수 있다.
58편의 3D 스캔과 59편의 AI 분석이 이런 장기 모니터링과 연결될 수 있다.
3D 스캔으로 풍화 속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조건이 적절하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석조문화재를 일정한 기준으로 반복 측정하고 데이터를 정확하게 정합하면 특정 표면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할 수 있다.
과거에는 “조금 많이 닳은 것 같다”라고 기록했던 변화를 공간 데이터로 비교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장비의 측정 오차와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를 실제 풍화와 구분해야 한다.
정밀한 기술일수록 기록 기준 역시 정밀해야 한다.
AI가 비 때문에 손상될 문화재를 미리 찾을 수 있을까?
미래에는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문화재의 재질과 위치, 강수량, 온도, 과거 균열 기록, 3D 변화 데이터 등을 함께 분석하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대상을 선별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AI가 “이 문화재는 비 때문에 손상될 것이다”라고 확정적으로 예언하는 것은 아니다.
59편에서 살펴봤듯 AI는 패턴과 위험 신호를 찾는 도구에 가깝다.
최종적인 원인 판단과 보존조치는 현장 조사와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하다.
야외 문화재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의 정답은 없다.
비를 막는 차양이 필요한 문화재도 있을 수 있고 배수 개선이 더 중요한 곳도 있다.
염류를 관리해야 하는 문화재도 있고 구조적인 균열을 먼저 안정화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손상이 나타난 뒤 표면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물이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이동하며 왜 특정 위치에서 문제가 반복되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보존은 결과보다 원인을 관리할 때 더 효과적이다.
비와 눈은 문화재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비와 눈은 단순히 문화재를 젖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기 중 오염물질을 표면으로 운반할 수 있고 석재와 화학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물은 균열과 기공 내부로 들어가 염류를 이동시키고 겨울에는 동결과 해동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
해안에서는 염분과 결합하고 습한 표면에서는 생물의 성장 환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 한 번이 문화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재의 풍화는 대부분 수많은 젖음과 건조, 추위와 더위, 오염과 세척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야외 문화재 보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번의 완벽한 처리가 아니다.
어디에서 물이 들어오는지 기록하고 배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며 균열과 표면 변화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지 장기간 관찰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3D 스캔과 환경센서, 사진 기록 같은 기술도 활용할 수 있다.
65편에서 도시의 공기가 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그 공기 속 물질을 문화재까지 운반하고 돌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물’의 역할을 살펴봤다.
그런데 비가 지나간 뒤 문화재 표면에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초록색 이끼가 자라고 주황색과 회색의 지의류가 돌을 뒤덮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까지 표면에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생물들은 문화재를 파괴하는 침입자일까?
아니면 수백 년 동안 문화재와 함께 살아온 또 하나의 역사일까?
다음 67편에서는 「문화재에 자란 이끼는 모두 제거해야 할까? 미생물과 생물학적 풍화」를 통해 돌 위에 살아가는 생물과 문화재 보존의 관계를 살펴본다.
cho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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